이런저런 이야기

여름 징역살이

파리은행장 2010. 8. 16. 16:57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 여름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C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所行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存在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미워하는 대상이

이성적으로 옮게 파악되지 못하고 말초감각에 의하여 그릇되게

파악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증오의 감정과 대상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 혐오에 있습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하여 키우는 "부당한 증오" 는 비단

여름 잠자리에만 고유한 것이 아니라 없이 사는 사람들의 생활

도처에서 발견됩니다.이를 두고 성급한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의

도덕성의 문제로 받아들여  그 人性을 탓하려 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 내일 온다 온다 하던 비 한줄금

내리고 나면 老炎도 더는 버티지 못할줄 알고 있으며, 머지않아

의 秋凉은 우리들끼리 서로 키워왔던 불행한 증오를 서서히

거두어가고, 그 상처의 자리에서 이웃들의 '따뜻한 가슴'을

깨닫게 해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秋水처럼 정갈하고 냉철한 認識을 일깨워줄 것임을

또한 알고 있습니다....후략

 

신영복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 "여름징역살이"에서...발췌

 

 

말복이 지난 지 약,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비가 자주 내리는 와중에도

날은 여전히 덥기만 합니다.

달력을 들여다 보니 처서가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물론,

처서가 된다 해도 더위가 바로 가시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8월도 이제 딱, 반이 지나고 있는 오늘은

광복절이자 휴일인 일요일...

 

공방에 나 앉아 주문 들어온 일을 하면서도

선풍기 조차 돌리지 못하고 보니(에어컨은 혼자 틀기엔 사치스럽거니와 에어컨도 없고 ^^;;

선풍기를 돌리면 털들이 날려서 그도 켜기가 좀 어렵습니다...)

어떻게든지 더위를 피해 보려

그냥 반바지에 소매 없는 티셔츠만 걸친 채 송글송글 맺히는 땀과 함께

하루 종일 공방에서 보내면서 시간 날 때마다 읽고,다 읽고 또 반복하여 읽어보는

신영복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여름철 가장 인상에 남는 위의 

글 내용을,  생각난 김에 잠깐 옮겨 보았습니다..

 

이 정도의 더위 쯤이야... 위의 글을 보면 아무 것도 아닐터...

조금만 지나면 곧 선선한 계절이 찾아올 것이라 생각을 해 보며

더워서 자꾸만 나태해지는 몸을 추슬러봅니다.

 

* 신영복 선생님은1941 경남 밀양에서 출생.

1966년~1968년 육군사관학교 경제학과 교관으로 있던 중

통혁당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고 20년 20일을 복역하다

1988년 8월 15일 특별가석방으로 출소.

1989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정치경제학, 한국사상사, 동양철학을 강의해 왔으며

1998년 3월 13일 사면 복권되었고

1998년 5월 1일 성공회대학교 정식교수로 임명되어 현재까지 재직중이시다.

 

우리가 마시는 술인 소주 이름 중 *처음처럼*이란 소주병에 붙여진 글자는

신영복교수님이 쓰신 것으로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