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 사진

기화천에서의 1박 2일

파리은행장 2012. 9. 23. 10:51

 

 

 

 

 

어이할꺼나...

보호어종으로 지정된 열목어가 리치 스트리머 훅에 걸려 나왔다.

그것도. 정식으로 훅을 문 것이 아니라 꼬리쪽에 훅이 걸린 교통사고다. -,.ㅡ

 

 



 

 

 

 

여기는 기화천.

선태의 제안으로 혼자 오십천에나 갈까했던 계획을 접고 

둘이서 금요일 낮 12시 조금 지나 서울을 출발하여 낚싯대를 들고 물가에 내려서니

오후 4시가 가깝다.

 

해가 짧아졌기에 이것저것 가릴 시간 없이 수량도 많고하여 일단 리치 훅을 달았는데

이게 그만 사고를 친 것이다.

 

하류쪽으로 마구 끌어당겨서 한 4짜급 무지개 송어가 걸린 줄 알았는데

가까이 끌어내 놓고 보니 열목어가 아닌가...

미안한 맘이되어 얼른 사진 두어 장 찍고

흐르는 물속으로 돌려보낸다.

 

 



 

 

 

기화천 열목어의 기억은...

지금 타이핑 하다가 옛날 기록해 둔 낚시일지를 찾아보니

1997년 4월 5일~6일 양일 간 4마리 잡은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대충 손꼽아 보니 15년 전의 일이다... -,.ㅡ

 

무지개 송어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건

1965년 어류학자인 정석조씨가 미국에서 수정란을 도입하여 부화에 성공한 것이

시초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무지개 송어가 왕성하게 살아가는 그 이전엔

기화천 수계가 열목어들이 주무대로 서식하던 장소였을지도 모른다.

 

양어장이 몇 개 들어서면서 무지개 송어에게 밀린 열목어들은

본류인 동강으로 자취를 감춘 건 아닐까?...

 

나 자신이 1997년 당시 홍창표님과 팩시밀리(FAX)로 자료들을 주고받곤 했었는데

홍창표님과의 대화에서도 기화천에서 열목어가 가끔 플라이에 잡혔단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기화천의 수량이 좀 많았기에 흐름도 거칠어서

드라이 플라이를 흘리기엔 편치 않아 보였지만

웨트 훅에도 반응이 드물어 

짧은 저녁해를 염려하며 드라이 플라이로 교체해 본다.

 

 



 

▲ 작은 산천어를 잡아 들고 멋적게 웃는 선태.

    선태와는 오래전 옛날에 무척이나 많이 이곳 기화천을 찾곤 했었다.

 

 

여기저기 포인트를 찍으며 해가 질 때까지 약 10여 마리의 무지개 송어와 산천어를

드라이와 웻트로 잡았는데 그만그만한 녀석들만 나온다.

큰 녀석들은 다 어딜 간 거지?...

 

 



 

 

 

이젠, 무지개 송어보다 산천어의 개체수가 더 많아진 건가?

확실히 산천어가 많이 나온다.

이 산천어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거란 말인가?...

영서 열목어와 영동 산천어 그리고

무지개 송어가 공생하는 이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둠이 내리는 수면 위에는 각날도래인 듯한 크기의 날도래와 그보다 조금 작은

날도래의 날개짓이 수퍼 해치보다 약간 덜한 헤비 해치(Heavy hatch) 쯤 되는 듯.

얼굴에도 가끔 부딛치곤 했다.

 

 



 

 

 

해가 저물었다.

태백에 거주하시는 영길님과 연락이 닿아 민박할 곳을 소개 받고

미탄 마을을 나와서도 5킬로 정도 더 들어가야 했는데

외딴 언덕길 넘어 찾아간 곳은 박학무식(薄學無識)한 나로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민박집은 분명 아니고...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자

약초향과 흡사한 내음이 이방인의 코를 부드럽게 자극한다.

안주인께선 서화를 전공하신 듯,

고졸(古拙)하게 느껴지는 넓직한 집안 내부는

만벽서화(滿壁書畵)로다.

방마다 천장이고 벽이고 먹으로 그리고 쓴 글씨와 그림으로 완전 도배되었고

나무를 태우는 난로가 놓여진 너른 공간엔 타악기인 드럼도 보인다.

 

한쪽엔 북들과 징들이 쌓아놓고 매달려 있는가 하면

방문객들이 가로로 얇게 썰어놓은 동그란 나이테가 있는 나무조각에

짧은 인삿말과 방문기록을 적어 놓은 것들을

주렁주렁 메달처럼 작은 들보에 매달아 놓은 것도 보이는데

간혹,

민속 공연을 하는 예인(藝人)들이 모여 연주를 하는 것도 같다.

주인되시는 분은 서울에 사셨던 듯하나

여기에 터를 잡은 지는 8년이 된다고 하신다.

 

이곳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제대로 된 설명을 할 수 없으므로

세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예다랑이라고 했던가?...

이름을 잊었나 싶어 확인하니 울터 예다랑이 맞다.

아마,

예(藝)와 차(茶)를 이야기 하는 듯하다.

 

밤 10시가 지나 태백에서 영길님이 도착하여

주인댁과 낚시이야기도 나누다 정갈하게 깔아주신 잠자리에 몸을 뉘었다.

영길님이 주인댁과 잘 아는 사이라

숙박은 무료... ㅠㅠ

 

이른 아침에 출발하느라 미처 인사도 드리지 못하고 나와

고맙고도 죄송하다.

 

 



 

 

 

숙소에서 나오니 날이 밝아온다.

영길님은 우선 미탄에서 하기로 하고, 나와 선태는

기화천 하류로 내려가 차를 세워야 했는데

옛날과 달리 도로를 정비해서 원하는 장소에 차를 세울 마땅한 공간이 거의 없다.

 

 



 

 

 

선태는 상류로 나는 도로를 걸어서 하류쪽으로 내려갔다.

하류쪽에서 드라이 훅을 달아 던졌지만 갈겨니의 입질을 한 번 받았을 뿐.

드라이에 반응이 전혀 없어 선태가 올라간 상류쪽으로 이동하며

큰 소에서 드라이 플라이를 공격하는

산천어 한 마리를 잡았는데 흘러가는 훅을 먹으려 점프하는 녀석도

두 마리 보았다.

 

 



 

 

 

▲ 날도래 - 짙은 밤색 계열.  크기는 약 1.5~6 센티 정도

 

전날 저녁무렵엔 5월경 대량으로 볼 수 있는 각날도래의 비상(飛上)이 많았고

작은 하루살이(18번 정도의 브라운 컬러)부터 큰 하루살이(Drake grade)까지

하늘거리듯 날아다니는 걸 가끔 볼 수 있었다.

 

 



 

 

 

드라이고 웻트고 반응이 무디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상 하류 곳곳에 플라이낚시 동호인들이 들어오기시작해서

여럿 보인다고 상, 하류로 이동하던 선태가 알려준다.

 

 



 

 

▲ 때깔이 너무도 곱고 아름다운 너의 이름은 산천어...

 

 

누군가 앞에서 낚시하면서 지나간다 해도 플라이를 던질 곳은 찾아보면 보인다.

그리고

그 플라이 훅에 유혹된 고기들은 더욱 반갑다.

 

 



 

 

 

전날 저녁에도. 오늘 아침에도 날도래들이 수면을 스치듯 날아다닌다.

커다란 각날도래 드라이 훅 패턴을 묶어서 던졌더니

큼지막한 갈겨니가 먼저 꿀꺽해서 기분이 떨떠름.

얌마~ 누가 허락없이 먹으랬냐 엉?...

 

 



 

 

 

미탄에서 낚시하던 영길님이 내려왔다.

작은 송어 한 마리 잡았다는 것 같은데....

 

 



 

 

 

낚시를 하면서 수면을 살피니 각날도래의 탈피각들이 자주 물 표면에 표류하는 것이

보였고 아래처럼 죽은 날도래의 사체가 떠다니는 것도 눈에 띄었는데

아마도 이렇게 떠다니다 고기에게 삼켜질 것이다.

 

 



 

 

 

 해가 환하게 뜨고나니 드라이고 님프고 달려드는 녀석들이 뜸해서

낚시하러 들어온 다른 플라이낚시인들도 고전하는 것 같다.

 

 



 

 

 

▼ 각날도래 웻트 - 짝퉁표 수퍼캐디스 웻트 훅에 나온 산천어.

 

 



 

 

 

오전 10시 경,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영길님은 태백으로...

우리는 조금 더 하기로 했지만...

 

 



 

 

 

12시 반...

아직은, 한낮의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이미 시들해진 낚시를 접고 도로를 따라 차가 세워진 곳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푸른 하늘엔 흰 뭉게구름이 익어가는 가을 풍경을 그려놓고 있었다.